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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융건릉,용주사 2007-08-12

이창신 2007. 8. 13. 13:05

♣ 일시 : 2007-08-12(일)

♣ 장소 : 융건릉 (경기 화성시 안녕동)

           용주사 (송산동)

♣ 비고 : 

 

▣ 융건릉

 <안내도>

 

 

 

 

 ▲ 관람료 어른 1,000원,  주차료  소형 2,200원(*200원은 부과세? 너무했다)

 

<건릉과 융릉 갈림길>

▲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건릉이 나오고 우측으로 가면 융릉이 나온다.  

 

  

<융릉으로 향하는 노송 길>

  

■ 융릉

▲ 융릉 전경

 

 

<융릉>

▲ 사도세자와 그 비(妃) 홍씨를 모신 융릉 

 

  

<융릉 안내판>

  

<정자각>

 

<비각>

 

 

 

 

  

 

 

 

  

<곤신지>

 

 

<산책길>

▲ 융릉과 건릉을 이어주고 있는 산책길이 능 뒤로 이어진다.  

 

▲ 산책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안성마춤이다.

 

  

 

 

 

▲ 안부 갈림길

 

▲ 산책길에서 본 수원시

 

■ 건릉

▲ 건릉 전경

 

▲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가 묻힌 건릉

 

   

<정자각>

▲ 정면

 

▲ 옆 모습

 

<비문>

 

 

  

<향나무>

▲ 주차장 한 쪽에 위치한 향나무

 

 

▣ 용주사

용주사는 조선 22대 왕인 정조(正祖)대왕이 비명에 가신 부친 사도세자(1735∼1762)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여 옛 갈양사터에 중창했다. 용주사 터는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갈양사로 창건돼 고려 광종

때 혜거국사가 불도를 닦던 곳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돼 폐허가 됐다.


효자로 알려진 정조대왕은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로

하는 절을 짓기로 했다.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긴 뒤 사찰을 중건, 사도

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이후 용주사는 불심과 효심이 어우러진 우리나라 효행의

본찰로 자리를 잡았다. 낙성식날 밤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꿔 용주사(龍珠寺)

이름을 지었다.

 

▲ 용주사 절문을 들어서면 바로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료 어른 1,500 원

 

<들어가는 길>

 

 

 

<효행 박물관>

정조의 효심이 어린 한국 효행(孝行)의 메카 답게 효행박물관이 있다.

 

 

▲ 용주사 현판

 

▲ 세존사리탑과 천보루

 

<천보루>

 

 

 

 

 

<대웅전>

 

 

 

<전강 영신대종사 사리탑>

▲ 용주사의 정신적 지주로서 중앙선원을 개창한 전강대선사 사리탑

 

 

<시방칠등각>

 

 

 

<범종각>

▲ 국보 120호 범종

 

 

<천불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탑>

▲ 대웅전 옆 잔디밭에 세워져 있다.

 

▲ 부모님의 높고 큰 은혜 10개항을 새긴 탑이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1.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잉태해 몸에 품고 지켜주시는 은혜),

2.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해산할 때 고통을 이기시는 은혜),

3.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시는 은혜),

4. 연고토감은(咽苦吐甘恩: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자식에게 먹이시는 은혜),

5. 회간취습은(廻乾就濕恩:마른 자리 아기 뉘고 젖은 자리 누우신 은혜),

6.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7.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씻어 주시는 은혜),

8.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자식이 멀리 떠나면 걱정해 주시는 은혜),

9.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자식을 위해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은혜),

10.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끝까지 염려 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

 

▷ 후기

 궁평리에서 열린 청소년 가족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양성지를 먼저 둘러본 후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화성 용주사융건릉을 찾아 갔다. 남양에서 큰 길 따라 곧장 따라 갔으면

고생않고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중간에 샛길로 새는 바람에 엉뚱한 방향으로 돌고돌아 한참후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됐지만 몰랐던 길도 알게 되어 후회는 없다.

 

융건릉은 생각보다 정리를 잘 해 놨고 산책로가 맘에 들었다. 사도세자, 뒤주 얘기를 역사시간에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주인공이 여기에 묻혀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능 관람이 1시간이면 충분할거라고 했는데 여기서 1시간 30분을 보냈다.

 

용주사는 융건릉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유명한 사찰답게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정조

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용주사는 이에 걸맞게 볼거리도 많았다. 

       

"끝"